전도서

전도서의 내용:

전도서의 핵심이 되는 낱말은 '헛됨', 즉 하나님을 떠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전혀 허망하다는 것이다. 전도자(전통적으로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지혜롭고 부유하며, 가장 영향력이 컸던 왕 솔로몬이라고 여김 1:1, 12)는 '해 아래' 의(1:9) 삶을 관망하고서, 인간적인 관점에서 그 모든 것이 헛되다고 선언한다. 하나님 자신이 아니고서는 권세, 인기, 명성, 쾌락 등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인생 가운데 만들어 놓은 신 그 공허함을 채울 수 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자 삶의 의미와 목적이 생기게 되고, 그리하여 솔로몬은 '먹고, . . . 마시며, . . . 기뻐하며, . . . 선을 행하고, . . . 낙을 누리고, . . . 하나님을 경외하고, . . .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3:12-14)고 외치게 된다. 인간의 삶이 바로 하나님이 날마다 주시는 선물임을 깨닫게 되면 허무와 절망은 사라져 버린다.

전도자의 번역된 히브리어 '코헬렛'은 아주 드문 용어로, 전도서에서만 나타난다(1:1, 2, 12, 7:27, 12:8-10). 이것은 '회중을 소집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카할'에서 파생된 낱말로서, '회중에게 말하는 자', 즉 '설교자',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70인역은 헬라어 '에클레시아스테스'라는 말로 표제를 삼았는데, 이것은 에클레시야('집회, 회중. 교회')에서 파생된 것으로, '전도자'라는 뜻이다. 라틴어 '에클레시아스테스'도 '회중 앞에서 말하는 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전도서 저자:

전도서의 저자가 솔로몬이라고 하는 데에는 몇 가지 유력한 증거가 있다.

첫째, 외적인 증거로 유대 탈무드의 전승은 전도서가 솔로몬의 저작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히스기야의 서기관들이 본문을 편집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잠언 25:1). 탈무드의 이러한 증거를 근거로 전도서가 히스기야 시대나 에스라 시대에 편집되었다고 믿는 학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오늘날  교회의 정통적인 입장은 전도사가 곧 솔로몬의 저작이라고 주장한다.

둘째, 내적 증거로 저자는 1:1, 12절에서 자신을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다윗의 자손으로서 이 책의 저작자로 손꼽히는 사람은  솔로몬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로 알려져 있다(1:16, 왕상 4:29-30). 쾌락의 추구(2:1l-3), 놀랄 만한 업적(2:4-6), 비교할 수 없는 재물(2:7-10)에 대한 코헬렛의 묘사는 오직 솔로몬 왕만이 이룬 것이었다. 이 책의 잠언은 잠언서의 잠언과 비슷하다(7장, 10장). 12:9에 다르면 코헬렛은 많은 잠언들을 수집하여 정리하였는데, 그것은 아마도 잠언서에 있는 솔로몬의 두 잠언집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도서가 한 사람의 저작이라는 사실은 '코헬렛'에  관한 언급이 책 전체에서 7회나 반복되어 나타난다는 점으로도 알 수 있다.

 

전도서의 시대적 배경:

어떤 학자들은 전도사의 문학형식이 포로기 이후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상 전도서의 문학형식은 아주 독특해서, 그것으로 이 책의 기록 연대를 측정하기가 어렵다. 1:16의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자"라는 귀절이 솔로몬 시대 이후의 저작설을 주장하는 하나의 근거가 되어 왔으나, 솔로몬 시대 이전에도 예루살렘에는 많은 왕과 지혜로운 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솔로몬은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을 다스린 다윗의 유일한 아들이었다(1:12).  전도서는 솔로몬의 말년, 즉 B.C. 935년경에 기록된 것 같다. 만일 그렇다면 솔로몬 통치 초기의 큰 명성은 이미 쇠퇴해 가기 시작한 때이고, 이스라엘은 곧 두 왕의 솔로몬의 청년기에, 잠언은 중년기에, 전도서는 노년기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전도서는 솔로몬 자신의 어리석음과 육신의 정욕과 우상숭배로 인해 인생의 황금기를 낭비해 버린 것에 대한 후회를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른다(왕상 11장). 코헬렛의 생에 관한 개인적인 면 이외의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된 것이 없다. 장소는 이스라엘의 권위와 통치의 자리인 예루살렘(1:1, 12, 16)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