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바라보는

성경의 권위신조의 권위

정리. Dr. Phillip Sang C Rey (Goahead Theological Seminary)

루터의 신학은 독창적이기 때문에 그의 신학을 자세하게 연구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들리는 루터의 목소리는 분명히 그 자신의 것입니다. 그러나 루터는 특별히 독창적인 것을 말하려고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경과 정통 교회의 교리에 담겨 있는 진리를 올바로 설명하는 것만이 자신에게 위임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모든 신학 작업은 성경의 권위와 여기서 파생된 교회의 참된 전통의 권위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점에서 출발할 것입니다. 즉 루터의 모든 신학적 사고는 성경의 권위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이 신학은 성경을 해석하는 하나의 시도에 불과합니다. 그것의 형태는 근본적으로 주석입니다. 그는 스콜라주의적 의미와 조직신학자도 아니고 거대한 중세적 체계의 의미이든 현대 신학적 의미든 교의학자도 아닙니다. 그는 교의학이나 윤리학을 쓴 것도 아니고 신학대전’(summa)을 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결코 멜랑히톤의 개별적인 신학요론’(loci theologici)이나, 칼빈의 기독교 강요같은 작품을 저술하지 않았습니다.

루터는 비덴베르크 대학의 성서 주석 담당 교수였습니다. 따라서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구약과 신약의 주석 강의였는데 일부는 그가 직접 편집하였고 일부는 다른 사람이 편집한 것입니다. 이런 강의들 이외에 또한 설교문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중에서 얼마는 루터 자신이 출판하기 위하여 준비한 것이고, 다른 일부는 그의 학생들이 필기하여 출판한 것입니다. 이런 설교문에서 다시 한번 루터가 성경 본문 자료를 잘 해석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또한 주제별로 쓴 그의 크고 작은 저술 역시 성경 인용으로 가득 차 있고, 대부분 주석적인 것이 그 특징입니다. 루터는 또한 신학 박사 학위 시험의 일부였던 공개 토론회에서 학생들이 답변하도록 논제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는 비록 이것을 가능한 한 예리하고 간단한 신학적 형태로 구성하고자 했지만 끊임없이 그의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를 사용해서 성서 본문을 명시적으로 혹은 암시적으로 인용하였습니다.

루터 작품의 이런 측면들과 스콜라주의의 위대한 신학 작품들을 비교해 보면, 그이 신학 방법을 결정짓는 새롭고 특징적인 요점이 나타납니다. 루터는 주석가로서 그리고 설교가로서 전례 없이 성경과의 부단한 대화를 통해 사고하였습니다. 그의 신학의 각 단계들은 대부분 성경에서 그 기초와 방향성을 얻었습니다. 물론 그 역시 교부들을 인용하였고 때로는 노예의지론과 같이 신학적인 논제를 위한 이차적 증빙 자료로 철학이나 자연이성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루터의 신학을 볼 때, 그것은 그의 방법에서 이차적이거나 주변적인 첨가에 불과하였습니다.

이 점에서 루터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교해 보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물론 토마스 아퀴나스 또한 성경을 인용하고 있으나 이것 외에도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타마스 자신의 철학적, 존재론적 숙고에 대한 언급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루터는 항상 우선적으로 성경에 그리고 종종 오직 성경에만 정향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 때, 이것이 루터에게 끼친 오캄주의의 영향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여기서 관심을 갖는 것은 그의 신학적 방법의 의식적인 의도입니다. 그는 그가 성경에 근거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을 자신의 신학적 의견과 구별하였습니다. 후자는 성경에서 입증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루터는 다른 사람이 그것을 꼭 받아들여야 할 구속력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스콜라주의 학자들보다 때로는 초대 교부들보다 성경을 더 잘 이해했고 또한 다른 사람들이 성경을 더 잘 이해하도록 가르쳤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루터가 얼마나 일방적으로 또는 무리하게 성서 해석을 했는가 하는 문제는 논의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의 정경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문제들은 루터가 성경을 비평할 때조차도 오로지 성경에 대한 온순한 청종자와 학생이 되기를 원했다는 사실을 바꾸지 못합니다.

이 점에서 루터는 교회 안에서 성경의 권위에 대한, 자신의 가르침이 완벽한 본보기였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도적 증언의 기록이고, 그 자체로 교회에서 결정적 권위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이 교회의 터전이기 때문에 그들의 권위가 기초가 됩니다. 다른 어떤 권위도 사도들의 권위와 동등할 수 없습니다. 교회 안의 다른 모든 권위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데서 나오고 사도들의 가르침에 일치함으로써 유효합니다. 이것은 성경만이 신앙의 조항을 세울 수 있고, 구체화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을 위해서 성경에 선포된 것 이상의 다른 진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윤리적 교훈뿐만 아니라 신앙의 조항에도 적용됩니다. 후대의 교의학자들이 주장했듯이 성경은 충분한것입니다.

이미 성경에 포함되지 않는 어떤 교회의 교리나 규정도 구원에 필수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대표자들도 심지어 공의회조차도 새로운 신앙 조항이나 새 계명을 수립할 권위를 가지지 못합니다. 이것은 교회 교부들이나 그들의 신학 작업과 가르침이 무시되고 거부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타당성은 성경에 대한 적합성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으로 자신들의 진술을 구체화해야 하고 성경에 근거하여 핀잔을 받거나 비판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만이 이 땅 위에서 모든 문서와 교리의 참된 주인이자 지배자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경만이 교리 논쟁에서 결정할 수 있는 권위입니다. 더구나 교회의 선생과 교부들의 진술은 신앙 조항과 같은 수준에 놓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양심이 필요로 하는 바 하나님의 말씀만 무조건적으로 신뢰할 수 있고, 교부들의 가르침은 그렇게 할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스승들은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실제로 오류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절대로 오류를 범할 수 없습니다. 그르므로 성경만이 절대적 권위를 가지는 것입니다. 교회 신학자들의 권위는 상대적이고 조건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