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HATOLOGY 종말론

성경의 모든 예언과 계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중심으로 하는 종말을 향하고 있습니다. 종말에 대한 예언은 신약성경의 어떤 특정 부분이 아니라 신구약 모든 성경에서 조명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신앙 생활에 목적이 되는 것이 종말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종말 신앙이 불신자에게는 심판과 멸망의 시작을 의미하고 성도들에게는 영원한 영광과 승리의 출발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피조물의 심판날인 종말을 통해서 인류의 궁극적인 소망이 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즉 천국의 삶이 완성됩니다.

'종말론' 이라는 용어 '에스카톨로지'(ESCHATOLOGY)는 '최후', '마지막' 이라는 의미의 헬라어 '에스카토스' 에서 유래된 말로 성경의 '말세'(에스카투 톤 크로논)는 베드로전서 1장 20절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For He was foreknown befor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but has appeared in these last times for the sake of you") 와 '마지막 때'(에스카테 호라) 는 요한일서 2장 18절에 있는 내용으로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줄 아노라" Children! It is the last hour; and just as you heard that antichrist is coming, even now many antichrists have appeared; from this we know that it is the last hour" 등 성경 많은 구절에서 종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이 세상의 종말이나 인류의 마지막에 관한 일들에만 국환 되지 않습니다. 종말론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에 관련된 여러 가지 사건들이지만 보다 더 정확한 의미는 인간 사후 문제와 지구 종말 이후에 일어날 일들에 관한 것까지 포함된 '만물의 최종적 완성에 대한 이론'입니다.

그러므로 종말론은 단순히 초월적 능력의 개입으로 인한 이 세상 질서의 파괴와 영원한 나라의 시작으로만 이해될 것이 아니라 창조 이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쁘신 뜻에 의해 작정하신 '신적 작정'(Divine Decree), 즉 창조로부터 종말에 이르는 전 우주와 인류에 대한 그분의 온전한 계획의 완성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종말론은 죽음과 영생의 문제, 죽음으로부터 부활까지(중간기 상태)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개인적 종말론'(Individual Eschatology)과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 죽은 자의 부활과 최후의 심판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 곧 최후의 상태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는 '일반적 종말론'(General Eschatology)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제1장. 개인적 종말론 (Individual Eschatology)

I. 육체의 죽음(Physical Death):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은 육체적, 영적, 영원적인 죽음 모두를 포함합니다.

1) 육제적 죽음이란? 영혼의 신체로부터의 분리요,

2) 영적인 죽음은? 부활로 말마암아 재결합한 악인의 영혼과 육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추방당하여 최종적인 고통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요한계시록 1:18절, 20:14절, 21:8절).

3) 영원적 죽음은? 육체적 죽음과 영적 죽음은 개인적 종말론에 포함되며 영원적 죽음은 일반적 종말론에 해당됩니다.

1. 육체적 죽음의 상징: 성경은 육체의 죽음에 대해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첫째, 성경은 육체의 죽음과 영혼의 죽음을 구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마 10:28, 눅 12:4,) 때문에 비록 살아 있는 자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와 상관 없는 불신자를 성경은 이미 죽은 자로 간주하였습니다.

(2)둘째, 성경은 육체의 죽음을 육체적 생명의 종결, 혹은 상실이라고 합니다(눅 6:9, 요 12:25). 이것은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죽음 그 자체가 곧 영혼의 멸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생의 사역적 관계들과의 분리'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육체적 죽음은 그가 육신을 입고 있을 때 맺었더 ㄴ여러 가지 육체적 관계로부터의 격리만을 의미할 뿐 존재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신적 삶에서 영적이 ㄴ삶으로의 이전을 의미하며,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삶의 경험을 뜻하는 '하나님과의 새로운 형태에서의 관계의 지속'을 뜻하는 것입니다.

(3)셋째, 성경은 육체의 죽음을 영혼과 육신의 분리로 말하고 있습니다(전 12:7, 약 2:26). 이것은 영과 육이 각각의 본향인 하늘과 땅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분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부활 때가지 계속되다가 그리스도의 부활 때 다시 연합하여 썩지도 병들지도 않는 시공을 초월한 완전한 몸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육체적 죽음이란 한마디로 '영혼과 육신의 분리로 말미암은 육체적 생명의 종결 또는 새로운 형태의 삶으로의 이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죄와 죽음과의 관계: ‘펠라기우스파’(Pelagians) 소씨니안파’(Socinians) 주장에 의하면 사람은 본래부터 가시적’(可死的) 상태, 단순히 죽음의 희생물이 가능성의 상태가 아닌 사멸’(死滅) 법칙에 종속되어 당연히 죽어야만 하는 상태로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전혀 조화가 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죽음의 가능성은 지니고 있으나 본래부터 죽을 운명을 가지고 창조되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죽음을 본래 선하게 창조된 인간의 외부로부터 들어온 것으로 말하고 있으며, 원인을 증거하고 있습니다(창세기 2:17, 3:19, 로마서 5:12,17, 6:23, 고린도전서 15:21, 야고보서 1:15).  성경은 죽음을 인생의 자연스러운 어떤 것이라 말하지 않고, 죄에 대한 신적 진노의 표현(시편 90:7, 11)으로 심판(로마서 1:32) 정죄(로마서 5:16) 저주(갈라디아서 3:13) 사람의 마음에 공포를 심어 주는 것으로(창세기 2:17, 사도행전 2:24), 그것은 친구가 아닌 으로(고린도전서 15:26) 묘사하였습니다. 그렇게 죽음은 처음부터 존재하였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온 것이며, 그것 때문에 죄와 죽음과의 관계는 필연적인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일반 은총으로 죄와 죽음의 역사를 제재하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의 특별 은총으로 사망의 권세를 정복하게 하셨습니다(로마서 5:17, 고린도전서 15:45, 디모데후서 1:10, 히브리서 2:14, 요한 계시록 1:18, 20:14).

 

3 성도의 죽음의 의미성경이 육체적 죽음을 죄의 ’, 죄에 대한 형벌 증거하고 있으나 그러한 선언이 성도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을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 성령의 법이 성도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기 때문입니다(로마서 8:1,2)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있어 죽음은 결코 죄의 형벌이나 대가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죄의 종말, 부패하여 썩어질 옛사람의 종말을 의미하며 성화의 완성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에게 있어서 죽음은 세상 질고와 고통 그리고 압제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동시에 영원한 위로와 안식에 이르는 축복의 관문인 것입니다(요한복음 3:36). 이렇듯 성도에게 있어서 죽음은 성도들의 영혼의 성화의 완성(히브리서 12:23, 요한 계시록 21:27) 온전한 생의 시작을 뜻하며, 천국에 들어가는 확신(고린도전서 15:55) 함께 영원한 부활의 소망(로마서 8:11, 데살로니가전서 4:16-17) 제공하기에 두려움이 아닌 기쁨으로 맞이할 있으며, 사도바울과 같이 담대히 그것을 소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고린도후서 1:18, 빌립보서 1:23-24).

 

II. 영생-영혼의 불멸(Immortality)

1 정의: 영혼의 불멸이란? 인생의 영혼이 육체의 죽음과 함께 소멸되지 않고 영원토록 독립적 실존이 보존된다는 의미입니다. 육신적 죽음과 함께 흙으로 빚어진 육체는 해체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영혼은 해체가 되지 않고 개별적 실존으로 본질을 보존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존된 영혼은 다른 부패와 죽음의 씨를 전혀 지니고 있지 않는 그의 신앙 여부에 따라 영생이나 영벌에 처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III. 중간기 상태(Intermediate State): 중간기 상태란? 죽음에서 부활 때까지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기간 중에 인간의 몸은 무덤에서 흙으로 돌아 갔지만 영혼은 즉시 영광 중에 들어가서 최종 상태에 이르기를 기다리게 됩니다. 이러한 중간기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중간기 처소, 스올과 연옥에 대한 고찰과 중간기 상태에서의 영혼의 상태에 대한 고찰이 필수적인 과제라 있습니다.

1 중간기 처소에 대한 고찰: 스올과 하데스에 대한 고찰 / 연옥에 대한 견해 /

1)      스올’(Sheol) 하데스’(Hades) 대한 견해: ‘스올 하데스 각각 구약과 신약에 나오는 중간 상태에 대한 용어입니다. 이곳을 장소적 개념으로서의 중간 상태 주장하는 자들에 의하면 그곳은 형벌의 장소도 아니고, 상급의 장소도 아니다는 견해입니다. 다만 그곳은 의인과 악인 모두가 동일한 운명에 처하게 되는 장소이며, 침울한 장소이고, 심판을 기다리는 임시적인 장소라고 보는 견해입니다. 그곳은 또한 약화된 의식의 장소요, 침체한 무활동의 장소이며, 생의 흥미를 잃고 생호라의 기쁨이 슬픔으로 번한 장소이기도 하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이러한 개념은 유대인의 삼층 구조적 우주관 하나님의 거치인 하늘과 지하 세계인 스올 또는 하데스, 그리고 인간이 거주하는 지상의 삼층 구조적 우주관에 기인된 것일 성경적 가르침은 아니라고 있습니다. 성경은 어떤 특정한 장소로서 스올과 하데스를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스올과 하데스에 대해 악인이 내려가는 장소이되 하나님의 경고가 임하는 장소(욥기 21:13, 시편 9:17, 잠언 5:5, 7:27, 9:18, 15:24, 23:14) 하나님의 같은 진노가 임하는 장소(신명기 32:22) 나타나는 동시에 때로는 의인이 내려가는 장소로도 묘사하고 있습니다(욥기 14:13-14, 17:13-14, 시편 89:48). 그러므로 스올이나 하데스는 결코 장소적 개념이 아닌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죽음의 상태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며, 의인과 악인 모두 스올과 하데스에 내려간다고 하는 구절은 인생 모두가 죽음에 처하게 됨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2)      연옥’(Purgatory) 대한 견해: 연옥설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중간기 상태에 대한 교리의 핵심입니다. 그들은 사람이 죽을 완전한 자들의 영혼은 즉시 천국에 들어가게 되지만( 25:46, 빌립보서 1:23), 완전히 정화되지 못하고 아직도 가벼운 죄들에 대한 죄의 대가를 치르지 못한 자들 성도 대다수의 죽음의 상태를 말함 천국의 최고의 복락의 상태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정화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고 하는 이론입니다. 정화의 과정이 연옥에서 이루어지는데 이곳에서 영혼들은 번민과 고통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사람의 영혼이 연옥에 머물러 있는 기간은 각자의 죄의 경중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러한 고통과 연옥에서의 기간이 땅에 남아 있는 자들의 진실한 기도와 선행에 의해 단축된다고 하는 이론입니다. 로마 교회는 이러한 그들의 주장을 외경 마카비2 12:42-45절에 두고 있으며 외에도 이사야 4:4, 미가 7:8, 스가랴 9:11, 말라기 3:2, 마태복음 12:32, 고린도전서 3:13-15, 15:29절에 두고 있으나 그러한 것들은 성경을 오해한 것일 전혀 성경적인 견해가 아니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연옥설은 다음과  같은 모순에 의해 지지될 없습니다. 먼저, 그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에 무엇을 첨가하여야 구속을 이룰 있는지에 대한 것과 이로써 그리스도의 대속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주장이 되므로 받아들일 없습니다. 둘째, 그것은 믿음만으로의 칭의를 거부하고 행위를 포함시키므로 인정될 없습니다. 셋째, 지상의 교회가 죄의 경감을 죄사함을 선포를 내릴 있다는 주장이므로 받아 들일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땅과 세상의 연관성을 말하므로 인정할 없습니다. 로마 교회의 연옥설은 외경을 근거로 인간에 의한 후대의 발명’(Pusey) 불과할 어떠한 성경의 지지도 받지 못하는 잘못된 교리이므로 결코 인정할 없습니다.

 

2 중간기 상태에서의 영혼의 상태: 영혼 수면설 / 영혼 멸절설과 조건적 영생설 / 2시련설

1)      영혼 수면설(Psychopannychy): 견해는 사람이 죽은 후에 영혼이 영적 상태로 존재를 계속하나 육체가 부활할 때까지는 무의식적 수면 상태에 있다고 주장하는 견해입니다. 19세기 영국의 어빙파’(Irvingites) 미국의 러셀파’(Russellites) 의해 받아들여진 교리는 다음의 가지를 주요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첫째, 성경은 종종 죽음을 자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데(다니엘 12:2, 마태복은 9:24, 사도행전 7:60, 고린도전서 15:51, 데살로니가전서 4:13) 이것은 영혼 수면설을 뜻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구들이 영혼 수면설의 증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죽은 성도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암시하기 위하여 그리고 주위 세계, 육체와 격리를 표현하기 위해서 육신의 죽음을 수면으로 묘사한 것일 영혼 자체의 수면이나 잠을 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째, 죽은 자의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단언하는 성경 구절들이 있다는 것입니다(시편 6:5, 30:9, 115:17, 146:4, 전도서 9:10, 이사야 38:18-19). 그러나 구절들이 그들의 주장대로 영혼 수면설에 대한 결정적 증거는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구들은 죽음에 처한 사람이 다시는 현세의 삶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사람의 운명은 최후의 심판 때에 결정되며 결정이 어떤 사람을 놀라게 것을 말하는 성구들이 있습니다(마태복음 7:22-23, 25:37-39, 44, 요한복음 5:29, 고린도후서 5:10, 요한 계시록 20:12). 이러한 말씀들은 최후의 심판 때에 놀라 깨어날 잠자는 영혼이 있음에 대한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오해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최후의 심판은 사건 심리에 대한 성격보다도 판결의 엄숙한 공포와 사람과 천사 앞에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기 위한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최후의 심판 때에 어떤 사람이 놀라는 것은 사람의 운명에 대해 놀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위로우신 공의에 놀라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렇듯 영혼 수면설은 성경에 의해 어떠한 지지도 얻지 못하며, 때문에 그것은 결코 성경적 개념이나 성경의 가르침이라 없습니다.

2)      영혼 멸절설(Annihilationism) 조건적 영생설(Conditional Immortality): 교리들의 핵심은 악인들은 죽은 후에 영혼이 멸절되며, 설령 존재를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의식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지 견해들은 결과에서는 동일하나 근본적인 논점에서는 서로 다릅니다. 영혼 멸절설 본래 죽지 않게 창조된 인간이 죄의 생활을 계속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단호한 처벌에 의하여 불사의 재능을 박탈당하고 마침내는 멸절되거나 혹은 영원히 의식을 잃어 실제적으로는 비존재와 같은 상태에 있게 된다는 것이지만, 조건적 영생설은 인간의 인간의 불사가 영혼의 생득적 재능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에게만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사라는 것입니다. 주로 소씨니안파’(Socinians) 스토아 학파’(Stoa) 의해 주장되다가 현재 안식교인들과 여호와의 증인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는 교리는 다음의 가지를 주요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첫째, 성경은 하나님 만이 고유적으로 죽지 않으신다고 증거합니다(디모데전서 6:17). 그러므로 사람은 불사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하나님의 속성과 그의 창조사역을 이해하지 못한 견해에 불과합니다.